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쓰게 된다. 학창 시절 참여하는 대외활동, 대학입시, 장학생 신청, 취업까지. 그러면서 자주 듣게 되는 자기소개서 공략법이 있다. 마치 진리처럼 여겨지는 공략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소개서는 구체적인 숫자(수치)로 본인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애매하고 주관적인, 두루뭉술한 표현들을 지양하고, 구체적인 숫자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횟수에 비해,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숫자로 나타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자신을 몇 가지 숫자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일까? 숫자로 나타내는 법을 살펴보기 전에, 언제나와 같이 그 배경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해보자.
'적당히'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
숫자로 나타내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그 반대의 경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지해야 한다. 주관적이고,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적당히'일 것이다. '적당히'는 레시피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떠올리는 감각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통의 기준을 정하고, 이를 수치화하여 약속을 정했다. 시간, 거리, 무게 등 모든 영역에서의 표준을 상정하기 시작했다. 1초, 1미터, 1그램은 소통을 위한 공통의 기준이다. 심지어 이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다. 표준화, 수치화를 통해 우리는 혼선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생각하는 '이만큼'의 양을 정확하게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레시피 이외에 '적당히'가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글이 있다. 바로 자기소개서다. 자기소개서에서 적당히는 없느니만 못한 표현이다. 글을 쓴 지원자의 '적당히'가 얼만큼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불확실함에 배팅하고 싶어 하는 인사담당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인사담당자의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수치를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공부 좀 적당히 잘했습니다."보다 "전교 10등 안에는 항상 들었습니다."가 강력한 이유는 생생함에 있다. 생생함은 구체적인 표현에서 온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화자와 청자가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며, 숫자는 아주 강력한 언어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수치화는 논리력을 뒷받침한다.
숫자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자신의 성과를 수치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며, 그것을 공감할 수 있게 제시하는 것 또한 논리력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논리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플러스가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추상적인 대상을 수치화하여 나타내는 작업을 말한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이타심을 "내가 배고프지만 나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빵의 개수"라고 조작적으로 정의해보자. 무엇이 가능해지는지 감이 오는가? 같은 정도의 배고픔을 전제한다면, 빵을 두 개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은 빵을 하나 양보할 수 있는 사람보다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A가 B보다 이타적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주관적인 평가가 아닌 객관적인 비교가 된다. "A가 B보다 빵 한 개만큼 이타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조작적 정의를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다. 이것이 수치화의 힘이다. 정의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B를 더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자소서에 녹여낼 수 있다면 아주 강력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합격자소서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를 측정한다. 이 역시 성과를 수치화하여 나타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수치화, 조작적 정의가 가능하다면 나름대로 본인의 KPI를 제시해볼 수도 있다. KPI는 정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KPI를 제시하여,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신입사원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수치화에 대해 보다 깊게 이해한 사람이라면, 본인에게 유리한 KPI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이 정도까지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면 이제 불합격이 더 어려워졌으리라 믿는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자신을 수치화하다 보면, 숫자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숫자들이 자신을 나타내는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자기소개서 위 숫자들은 단지 소통을 위해 채널을 맞춘 것뿐이다. 어려운 사람과의 1시간과, 사랑하는 연인과의 1시간이 다른 것처럼, 수치화되었다고 해서 모두에게 절대적일 수는 없다. 위의 두 가지 1시간은 모두 표준 1초를 기준으로 한 3,600초로 같지만, 주관적으로 느끼는 길이는 결코 같지 않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하나.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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