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들에서 성장과정, 지원동기를 쓰는 요령을 각각 다뤘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들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맹점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백지에서 깜빡이고 있는 커서를 바라보며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글쓰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커서는 잠시 제쳐두고 이번 파트에서 써야 할 글의 내용을 구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실수는 자기소개서의 각 항목 즉, 지원동기, 성장과정, 장단점 중 하나를 놓고 고민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소제목으로 나누든, 항목별로 나누어져 있든 각각의 파트를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다. 망망대해 같은 자기소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작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유양식이 아니라면 나누어져 있는 항목에서 해당 항목이 요구하는 내용을 채워가거나, 자유양식이라면 항목을 나눈 후 같은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제목과 같이, 항목별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중복과 누락이라는 함정이다.
자기소개서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 설득이다.
자기소개서는 팩트다. 픽션이 아니다. 아무리 좋게 봐도 페이크 다큐다. 흔히 '자소설'이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읽는 사람에게는 사실처럼 느껴져야 한다. 사실을 기반으로 자신에 대해 서술해야 하며,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읽는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문장으로 풀어 설명했을 때 어색하게 느낄 뿐이다.
논리를 전개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본은 중복과 누락을 피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을 떠올려보자.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서술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가 막힌 생략기법으로 몰입감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논리적 글쓰기는 다르다. 특히 지면이 한정되어있는 자소서 같은 성격의 글이라면, 한정된 지면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복과 누락은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자기소개서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논리가 있겠지만, 모든 자기소개서에 녹아드는 불변의 진리는 '잘난 것은 드러내고 싶고, 못난 것은 감추고 싶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모든 자기소개서가 지원동기에서는 '내가 어째서 잘났는지', 성장과정에서는 '내가 어떻게 잘나게 되었는지', 장단점에서는 '내가 이런 점이 잘났으며 못난 점은 어찌어찌해서 결국 못난 것이 아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번 첫 문장과 관련된 글을 통해, '전체 글에서 한 가지 주제를 크게 벗어나면 좋지 않다'라고 언급했었다.
다시 말해, 자기소개서 전체에서 드러내고 싶은 내용은 항목별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겹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겹치는 내용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누락되는 내용이 생긴다. 분량은 보통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분량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자기소개서를 100페이지씩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정된 공간에 같은 이야기가 중복되어 자리를 차지한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는 밀려나게 된다.
큰 그림을 그릴수록, 스케치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일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세부사항부터 채워나가는 식으로 완성되는 그림은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기소개서와 같이 논리적인 성격의 글이라면, 세부사항보다는 전체적인 구상을 먼저 하고 시작해야 한다. 항목별로 하나씩 접근하기보다는 전체 그림을 먼저 그려보자. 물론 처음부터 글 전체의 개요를 짜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자신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전하고 싶은 사건, 이야기들을 모두 정리해보자. 각각의 사건이어도 좋고 일련의 과정이어도 좋다. 순서도, 두서도 없어도 괜찮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우선 누락 없이 모두 쏟아내는 것이 목표다. 작성이 끝났다면, 쏟아낸 내용들을 어떤 순서,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이것은 논리의 구조를 짜는 작업이다. 전체 흐름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을 선별하고,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내용을 제외하고, 작성한 문단 단위로라도 순서를 구성해보자. 어떤 내용이 어떤 항목에 어울릴 것인지는, 이 블로그의 이어지는 글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뒤 세부내용, 즉 항목별로 작성을 시작해보자. 훨씬 논리적이고 정갈한 한 편의 자기소개서가 완성될 것이다. 이 블로그의 글들은 그런 세부 디테일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논리적인 글을 쓸 때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에 주어진 시간의 반 이상을 쓴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살을 붙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충분히 말을 걸고,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두자.
그 생각들이 많은 순간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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